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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 나를 지키기 위해 너를 지키지는 못했던 소년들

snownindi 2025. 6. 25. 17:40
파수꾼 포스터

 
  파수꾼은 기태의 아버지가 그의 죽음을 쫓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저는 작품 초반까지 기태가 누구인지 헷갈렸습니다. 기태 역이 서준영 배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기태는 분명 (같은 무리 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착한 아이였을 거라고 혼자서 단정지은 탓이었습니다. 정말 부끄럽군요.
 
  이 영화의 구조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이미 클라이맥스가 끝난 상태로 영화가 시작되죠. 사람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겠으나, 저는 기태의 죽음이 클라이맥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기태가 죽는 장면에 초점을 두지 않았을까요.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 극적으로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엠뷸런스의 사이렌이 울리고, 현장을 본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그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영화가 단지 '기태가 죽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틀면 우리는 얼마 안 가 기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태가 '왜' 죽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죠. 즉, 기태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에 시청자가 힘을 기울이도록 설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내가 나의 파수꾼이죠. 인간 관계란 안타깝게도 여기서 파국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태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살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조차 기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버팀목은 부모인데 기태는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사실상 없는 셈이죠. 결국 기태는 다른 버팀목을 선택합니다. 학교의 일진이 되어서 무리를 거닐고 다니는 형태로요. 거기서 제일 센 놈이 되니 모두 자신과 함께 하고 싶어 하죠. 늘 소외되었다고 느낀 자신이 거기서 만큼은 중심이 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기태가 친구라고 생각한 이들이 바로 희준과 동윤입니다.
 
  희준은 기태의 친구지만,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합니다. 작중에서 "내가 네 꼬붕이냐" 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고요. 아마 기태가 자신을 내려다본다고 여길 테죠. 여기다 화룡점정으로 기태에게 뚜드려 맞습니다. 월미도 여행 때 기태와 보경이 같이 있는 걸 분 뒤로 학교에서 기태를 모른 척했거든요. 같이 놀지도 않고, 혼자 묵묵히 공부하면서. 폭행까지 당하자 희준의 입장에서 더 이상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언제까지 내가 쟤 비위를 맞춰줘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죠.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 희준은 전학을 결정합니다. 전학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라고 보입니다. 기태가 희준을 때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또 욕을 한 건 사실 희준과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인데. 그걸 알 리가 없죠. 기태가 자신을 지키고자 한 선택이 희준과 멀어지게 만든 겁니다.
 
  얼마 안 가 동윤과도 트러블이 생깁니다. 동윤은 기태가 희준을 괴롭히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그것 때문메 몇 번 싸웠고 말이죠. 이미 희준과 멀어진 마당에 동윤까지도 그럴 수는 없었던 걸까요. 기태는 동윤에게 그의 연인인 세정에 관한 소문을 말해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슬펐어요. 동윤과 다시 친해지고 싶어서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은밀한 말까지 내뱉고 만 기태의 심리가 느껴졌거든요. 이 일로 동윤과도 끝장이 나죠. 나중에 동윤의 집에 찾아가지만, 되돌아오는 말은...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 아, 탄식이 나옵니다. 동윤도 끝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태를 끊어내죠.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요. 어쩌면 이때 기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동윤이 꺼낸 건 아닐까요.
 
사실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영화에서 명확히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단치 추측만 가능할 뿐. 그래도 저는 자살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현재로 돌아옵시다. 이미 기태는 죽었고, 그의 아버지와 동윤이 대면합니다. 아버지는 동윤에게 편하게 뭐든 이야기하라고 말하죠. 그러나 동윤은 화장실을 핑계로 그 자리를 빠져나옵니다. 이건 전에 기태를 저버리고야 말았던 그 순간에 대한 속죄이자 그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을 거라고 가늠해 봅니다. "그래, 네가 최고다 친구야" 동윤의 입에서 나온 '친구'란 말에 가슴이 쓰라립니다. 너무 얽히고 얽혀서 이제는 풀 수 없을 지경까지 가버린 그들이 눈을 감으면 그려지네요. 영화 [파수꾼]이었습니다.